1.15(목).26 매일성경읽기 QT 은혜의 제동 장치 I 한상인 담임목사 Publish on January 15,2026 | 서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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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목).26 매일성경읽기 QT 창세기 11:1-9
은혜의 제동 장치 I 한상인 담임목사
창세기 11:3-5 [새번역]
3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4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5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바벨’이라는 이름은 ‘혼잡하게 하다’를 뜻하는 히브리 낱말, ‘발랄(balal)’의 발음이 비슷합니다.
즉, [바벨]은 <인간편>에서는 ‘질서’처럼 보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혼잡’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벨(Babel)’은 <인간의 교만>이 초래한 [혼란]과 [분열]을 강조합니다.
단순히 높은 건물을 짓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에 인간이 스스로 도달하겠다는 선언이자,
하나님 말씀과 은혜 없이도 "스스로" 신의 자리에 서겠다는 부질없는 인간의 욕망의 표현이자,
하나님을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 바꾸려는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하늘에까지 닿도록 하려는 건축물]은 인간의 눈에는 위대해 보였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너무도 작아 "가까이 내려와 보셔야" 할 정도였습니다(창 11:5).
이는 인간의 야망과 하나님의 초월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의도적인 아이러니입니다.
사실 창세기 원역사(1–11장)에서 하나님은 이미 여러 차례 인간에게 "그들의 한계"를 상기시키셔야 했습니다.
에덴에서는 “네가 하나님처럼 되려 한다”는 교만을,
홍수 이전에는 “사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그리고 바벨에서는 집단적 능력과 통일이 죄와 결합될 때의 위험성을 드러내십니다.
특히 7절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사용하던 자기중심적이고 도전적인 언어 방식(“자, 우리가…”)을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시며,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자”
인간이 스스로 세운 질서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굳어져 가던 왜곡된 질서를 다시 바로잡기 위해 개입하십니다.
[적용 및 오늘의 기도]
바벨은 ‘높이’의 문제가 아니라 ‘의존’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목표로 삼았는가입니다.
사람의 생각에 '질서'처럼 보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엔 '혼잡'일 수 있습니다.
바벨은 인간 편에서는 매우 질서 정연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발랄(balal), 곧 혼잡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질서는 하나님 없는 질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효율적인 시스템, 강력한 기술, 빠른 성장과 통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분리될 때, 그 질서는 언젠가 '혼란'과 '분열'로 바뀝니다.
바벨의 ‘흩으심’은 심판이 아니라 <은혜의 제동>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질서를 부수기 위해 내려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 질서가 더 큰 파괴로 가기 전에 멈추게 하시기 위해 개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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