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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26 매일성경읽기 QT 멈춰 선 존재, 소금 기둥처럼 되고 만다. I 한상인 담임목사 Publish on January 27,2026 | 서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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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장로교회
댓글 0건 조회 152회 작성일 26-01-27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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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화).26 매일성경읽기 QT 창세기 19:12-23

멈춰 선 존재, 소금 기둥처럼 되고 만다. I 한상인 담임목사


창세기 19:16-17 [새번역]

16 그런데도 롯이 꾸물거리자, 그 두 사람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끌어서, 성 바깥으로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주님께서 롯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

17 그 두 사람이 롯의 가족을 성 바깥으로 이끌어내자마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롯의 가족에게 말하였다. "어서 피하여 목숨을 건지시오.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저 산으로 도피하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고 말 것이오."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자의적이거나 감정적으로가 아니라, 반드시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장면은 바로 이 '하나님의 공의(公義)'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본문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아브라함의 요청대로 <의인 열 명>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여기서 ‘열 명’이라는 숫자는 고대 사회에서 하나의 공동체, 혹은 '집단'으로 간주할 수 있는 최소 단위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한 도시 전체를 심판하시기 전에 <그 공동체 안에 의로운 공동체가 존재하는지>를 끝까지 살피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거의 무례해 보일 정도로 반복하여 간구한 이유는, 죄인들에 대한 막연한 자비를 요청했기 때문이 아니라,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실 수는 없다”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했기에 담대할 수 있었고, 그 기도는 <하나님의 정의>가 얼마나 엄격하면서도 정직한지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후 속담처럼 회자되는 “소돔 사람들의 죄악이 심히 무겁다”(창 18:20)는 평가는 창세기 19장에서 구체적으로 두 가지 모습으로 드러난다.


첫째, 소돔 사람들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 신성시되던 ‘손님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했다. 

당시에는 한 번 손님으로 맞아들인 사람에 대해서는 생명을 걸고서라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중동 지역 유목민들, 특히 베두인 사회에 남아 있는 극진한 환대 문화는 이러한 전통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돔은 이 '기본적인 인간성'과 '공동체 윤리'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둘째, 그들은 이스라엘 율법이 분명히 혐오하고 금지한 성적 폭력과 왜곡된 성행위를 거리낌 없이 시도했다.(레 18:22 참조)

이는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 질서>를 거부한 상태였음을 보여 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롯은 ‘손님의 권리’를 지나칠 정도로 절대화하여, 오히려 자기 딸들을 내어주려는 왜곡된 선택을 한다. 이는 소돔의 타락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 주는 동시에, 의인이라 불렸던 롯조차 그 문화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적용 및 오늘의 기도]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였으나... 롯이 지체하매”(창19:16)라는 표현은 매우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롯이 지체한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합니다. 그는 한순간에 <자신의 삶의 터전>과 <재산>, 그리고 <안정된 미래>를 모두 뒤로 두고 떠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순간에는 이러한 미련이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의 미련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롯의 아내는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라”(17절)는 천사의 분명한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구원받은 자>에게는, 비록 애석하다 할지라도 세상 미련을 향해 다시 뒤를 돌아볼 자리가 없습니다. 롯의 아내가 돌아본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었던 ‘멸망의 장소’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비록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실제 삶의 방향과 가치관은 세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롯의 아내는 육체적으로는 구원의 길 위에 있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소돔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멈춰 선 존재,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해 남단에 서 있는 수많은 소금 기둥들이 있는데,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뒤돌아본 신앙의 결말”을 상징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구원>은 '출발'이 아니라 '방향'이며, <믿음>은 말뿐이 아니라, 끝까지 전진하는 <순종>임을 오늘 말씀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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