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23 귀납적 말씀묵상 QT ☀엘리야 선지자의 ‘탈진’과 ‘우울증’ I 한상인 담임목사 Publish on October 21,2023 | 서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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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0.21.23
귀납적 말씀묵상 QT 왕상 19장 1~21절
☀엘리야 선지자의 ‘탈진’과 ‘우울증’ I 한상인 담임목사
열왕기상 19:1~4절 [새번역]
1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2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3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4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아합>은 '북 이스라엘 7대 왕'이고, <이세벨>은 그의 아내이다.
'이세벨'(기원전 842년경)은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인데, 아버지 이름에서부터 ‘바알’이란 이름이 들어있을 정도로 <이세벨>은 바알 숭배자였으며, 성경에 그녀는 '악하고' '잔인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세벨>은 그녀의 남편 아합 왕을 유혹하여, '바알 숭배자'로 만들었다. 그래서 아합 왕은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지었고, '바알의 제단'을 만들었으며, '아세라 여신상'을 세웠을 정도로 '이세벨'의 유혹에 넘어갔다.
이렇게 함으로써 결국 그는 '여호와의 노'를 격발했다.(왕상16:31~32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는 그 유명한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450명)과 '아세라 선지자들'(400명)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다음에, 어떤 연유로 그는 광야로 도망처 '홀로' 고독에 빠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엘리야 선지자>의 지치고, 모두에게 버림받은 예언자의 '깊은 좌절'과 '우울한 상태'를 바라보며, 우리 역시도 삶에 대한 '불안'에서 삶에 대한 '권태'가 생겨날 수 있음을 교훈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깨달아 곧바로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 숭배에 대항하여' 열심히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엘리야가 결국 '그의 조상들'보다 더 낫게 이룬 것은 없었다는 생각에 '기진맥진' 해졌고, 심지어는 '무기력감'에 빠졌다.
교회 안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오랫동안 헌신하는 성도들 역시도 엘리야의 심리 상태와 비슷한 감정과 상황에 빠질 때가 있기 때문에 잘 공감가는 내용일 수 있다.
<기독교 상담학>에서는 '엘리야와 같은 상태'를 놓고, <우울증 증세>라고도 정의한다.
신대원 시절, 학교 채플 시간에 '기독교 상담학을 가르치시는 어느 교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의 상태를 <영적 우울증>의 상태로 진단하신 기억이 떠오른다.
과거를 돌아보면, 목회 사역을 하다가 간혹 지칠 때가 있었는데, 바로 그때 '엘리야의 심정'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다른 말로는 <번 아웃>이 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러한 때에 '엘리야도 이렇게 힘들고 지칠 때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에 많은 위로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선지자는 방금 '영적인 정점'을 경험했고, 그것은 '궁극의 정상'이었다.
그는 '갈멜산'에서 '불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행사를 목격했고, 곧바로 현실로 되돌아왔다. 따라서 그토록 '우울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엘리야의 탄식>에는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하나님에 대한 엘리야의 어떤 비난'이 들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직접 대답하시지 않으시고, 엘리야가 '하나님의 본질'을 '직접' 깨닫도록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참된 본질을 <고요한> 상태 가운데 들을 수 있도록, '세미한 음성'(왕상19:12)으로 나타내 주셨다.
좀더 깊이 있게 엘리야의 심리 상태를 파악해 보면 그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죽기를 구하며(왕상19:14절) 탄식하고, '영적인 우울감'에 빠져 있었던 이유는 그 자신 스스로 <혼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에게로 향해서 우상에 입맞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엘리야>로 하여금 깨닫도록 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왕상 19: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두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떠난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를 넘어서서 먼 훗날까지 미치는 <새 임무>를 그에게 맡겨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적용:
1.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삶에 대한 [권태]가 생겨날 수 있음을 우리도 기억하고, 이러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바로 깨달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새롭게 회복할 수 있도록 하여 하옵소서.
2.엘리야는 스스로 혼자라고 생각하며 [고독]과 [외로움]에 짓눌려 탈진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엘리야 혼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칠천 명>을 남겨두셨듯이 우리 모든 성도들도 외로움과 두려움에 소진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찬양: 요게벳의 노래(feat.조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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