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23 귀납적 말씀묵상 QT ☀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 I 한상인 담임목사 > 말씀묵상QT 은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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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23 귀납적 말씀묵상 QT ☀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 I 한상인 담임목사 Publish on October 12,2023 | 서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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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장로교회
댓글 0건 조회 2,918회 작성일 23-10-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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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0.12.23. 

귀납적 말씀묵상 QT 열왕기상 15:9-24절


☀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 I 한상인 담임목사


열왕기상 15:11-15절 [새번역]   

11 <아사>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12 그는 성전 남창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고, 조상이 만든 모든 우상을 없애 버렸다.

13 그리고 그는, '자기 할머니' 마아가가 아세라를 섬기는 혐오스러운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기의 할머니를 왕 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아사는, '할머니'가 만든 혐오스러운 상을 토막내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14 그렇다고 해서 산당이 모두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주님을 사모하는 아사의 마음은 평생 한결같았다.

15 그는 자기의 아버지와 자기가 거룩하게 구별해서 바친 은과 금과 그릇들을, 주님의 성전에 들여놓았다.



북 왕국의 초대왕 <여로보암>은 자신의 재위 기간 동안 남 왕국 3대 왕(르호보암, 아비얌, 아사)을 상대한 셈이다. 

그런데 대하 13:20절에 의하면, <여로보암>은 <아비얌>과의 전투 이후,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결국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아사>가 즉위할 무렵 <여로보암>은 패전의 후유증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여로보암>은 <아사>의 통치에 별 위험이 되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아사>가 비교적 안정된 정세속에 눈을 '내부'로 돌려 [종교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이렇게 <아사>는 [종교 의식]을 <개혁>하였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14절에 보면,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이해가 좀더 필요하다. 솔로몬 성전이 완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산당의 제단'을 통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다.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되어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아직까지만 해도 '중앙 성소 사상'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중앙 성소 사상'이 정착될 수 있었던 때는 그로부터 몇백년이 지난 <요시야 왕> 때이다. <요시야 왕>이 예배를 '중앙 성소'에 집중하게 하고, 종교 개혁을 일으키면서 비로소 '산당 제사'가 없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후세의 눈'으로 <아사> 왕을 바라볼 때에는 이렇게 '산당'을 없애지 않은 일에 관하여는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산당'이라는 장소 자체가 '우상 숭배'와 관련된 지역과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절에 보면, 아사 왕의 어머니의 이름이 <마아가>라고 나오지만, 정확히는 <아사> 왕의 '할머니'이다.(2절을 참조)

13절 "그리고 그는, '자기 할머니' 마아가가 아세라를 섬기는 혐오스러운 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자기의 할머니를 왕 대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아사는, '할머니'가 만든 혐오스러운 상을 토막내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라 버렸다." 


아무튼 <아사>왕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고(11절), "그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하나님께 '성별'한 삶"(14~15절)을 살았다.   


'신앙인'이라면, 이 시대의 '바른 신앙인'으로서 살기 위해서, 그리고 은혜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서 '말씀'에 입각한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자기 반성'이란 ‘자기의 언행에 대하여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스스로 돌이켜 봄’을 의미하고, '성찰'이란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거나 살핌’을 뜻한다. 그래서 '자기 성찰'이란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살핌’을 의미한다.


초대 교회에서도 <바울>은 갈등을 겪고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두 번이나 강력하게 '자기 자신'을 살펴보라(자기 성찰)고 촉구했다. 

첫번째는 성찬에 참여하는 자세와 관련해서였고(고전 11:28), 두 번째는 믿음 자체의 진정성과 관련해서였다.(고후 13:5)   


'종교개혁자' <장 칼뱅>도 [기독교 강요]의 서문에서 '자기 성찰'에 대하여 말했다.

그는 참되고 건강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에서도 비롯 된다고 보았다. 


'청교도들'은 '자기 성찰의 실천'을 가장 중요한 가르침과 경건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성찰'을 실천할 수 있는가?"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우리 자신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둘째, 우리는 또한 나 자신의 삶을 고쳐 달라고 간청해야 한다.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4) 


셋째, 하나님께서 나 자신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4)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적용:

1.'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내 삶과 나의 생활을 비추어 보고,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삶이 되기 위하여 항상 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옵소서.  


2.'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을 통해 '온전'하고 '성별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찬양: 시편 139편 Psalm 139 | 제이어스 J-US

https://youtu.be/mgS_ng-wAq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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