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목).26 매일성경읽기 QT 새로운 ‘성전’, '예수님의 삶'의 의미이자 '그분의 사명' Publish on February 04,2026 | 서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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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목).26 매일성경읽기 QT 요한복음 2:13-25
새로운 ‘성전’, '예수님의 삶'의 의미이자 '그분의 사명' I 한상인 담임목사
요한복음 2:18-22 [새번역]
18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물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다니, 무슨 표징을 우리에게 보여 주겠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야,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서, 성경 말씀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성전 정화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미 구약성경에 예고된 예언적 사건이었다.
'주님의 집을 생각하는 열정이 나를 삼킬 것이다.'(시편 69:9)
그러나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의 참된 의미는 그 즉시로 제자들에게 조차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 사건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열어 준 '열쇠'는 '구약 성경에서 인용된 말씀'(17절)과 '예수님의 선언적 말씀'(19절) 속에 담겨 있었다.
이 말씀의 온전한 의미는 요한복음이 분명히 말하듯(21–22절),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야 비로소 밝혀졌다.
<부활>은 요한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원리로서, 예수님의 모든 말과 행위를 해석하는 '결정적 빛'이다.
예수님의 전체 삶은 17절에 따르면, '시편 69편 9절'의 빛 아래서 이해되어야 한다.
곧 “주님의 집에 쏟은 내 열정이 내 안에서 불처럼 타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사명은 ‘하나님의 집’을 <종말에 합당한 예배의 자리>로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는 것이 그분이 감당해야 할 과제였다.
그래서 19절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라는 말씀이 21절의 해석에 따라, 모두가 <예수 자신>, 곧 <그분의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헐어버리려 했으나(곧 죽이려 했지만), 몸을 지니신 예수, 그분 자신은 '부활'과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로운 ‘성전’, 곧 종말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참된 장소>가 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러한 성전을 이 땅 위에 마련하는 것,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하나님 임재의 자리로 내어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의 의미'이자 '그분의 사명'이었다.
유대인들은 20–21절에서 오해에 빠졌다.
20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구요?"
21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러나 이 오해는 요한복음에서 자주 반복되는 유형의 오해로, 사람들의 '불신앙적 폐쇄성'을 드러내는 특징적인 오해이다.
사람들은 서로 격리된 세계 속에서 사고하고 말하며 살아가기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영적이고, 종말론적인 의미로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은 '외면적이고 물질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려 하며, 마침내 그 말씀을 허튼 소리처럼 치부해 버렸다(20절).
[적용 및 오늘의 기도]
오늘 우리의 삶은 여러가지로 바쁩니다.
생존의 압박이 있고,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있으며, 삶의 무게로 지친 마음을 안고 예배의 자리에 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예배를 “위로받는 공간”, “숨을 돌리는 장소”, “잠시 쉬어 가는 종교적 루틴”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도 묻고 계십니다.
“너는 어디로부터 삶의 안정을 찾고 있느냐?”
“너는 무엇을 의지하여 예배하고 있느냐?”
참된 예배는 예배당에 ‘와 있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 자신을 내어놓을 때’ 시작됩니다.
건물이 아니라, 분위기가 아니라,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나를 위해 몸을 찢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붙들고 감사와 기쁨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여시고자 하셨던 <새로운 성전의 예배>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만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광야 같은 이민생활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참된 성전>은 이제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그분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생명 안에서만, 우리는 참된 예배자로 서게 되며, 그 성전 안으로 들어가 '참된 기쁨'과 '감사의 예배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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