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금).26 매일성경읽기 QT '거듭남', 그 기적에 '참여하기' 위하여 <니고데모>가 한 일 I 한상인 담임목사 > 말씀묵상QT 은혜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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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금).26 매일성경읽기 QT '거듭남', 그 기적에 '참여하기' 위하여 <니고데모>가 한 일 I 한상인 담임… Publish on February 05,2026 | 서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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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장로교회
댓글 0건 조회 145회 작성일 26-02-05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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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금).26 매일성경읽기 QT 요한복음 3:1-15

'거듭남', 그 기적에 '참여하기' 위하여 <니고데모>가 한 일 I 한상인 담임목사


요한복음 3:1-5 [새번역]

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사람의 한 지도자였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으로, 엄밀히 말하면 유대 사회의 종교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산헤드린 공회란: 산헤드린 공회(Sanhedrin)는 예수님 시대 유대 사회에서 최고 종교·사법·행정 기구로서, <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관>이다. 산헤드린은 세 그룹으로 이루어졌는데, 대제사장들과 제사장 계열(주로 사두개인), 장로들(귀족·사회 지도층), 서기관들(율법 교사, 바리새인 계열)이 바로 그것이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안에서도 '서기관 집단'에 속해 있었으며(요 3:10 참조), 그 당시 서기관들 다수는 <바리새파> 출신이었다.


<니고데모>와 그의 동료들(2절)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랍비)”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인식'은 예수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엄밀하게 따져서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요 2:23 참조)에 근거한 것이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합니까?”

(요3:9, 요 6:28, 막 10:17)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의 관심을 꿰뚫어 보신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니고데모>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질문은 그 당시 유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던 종교적 대표적인 질문이었다.


<니고데모>의 물음(9절)은 사실 그 자신이 이미 답할 수 있었어야 하는 질문이었다.(10절)

유대교 전통은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성령께서 종말의 때에 행하실 사역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일은 인간의 행위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기적일 것임을 분명히 증언해 왔다.

에스겔 11:19, 36:25–27, 이사야 44:3, 예레미야 31:33절은 모두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고, 율법을 인간의 내면에 새기시며, 성령으로 생명을 새롭게 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다.


추측컨대, 니고데모는 이 모든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적 지식에 머물러 있었다. 

실존적으로, 다시 말해 자기 존재 전체가 걸린 문제로 이 질문 앞에 서게 되자, 그의 지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했고”, “가르칠 수 있었지만, 살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의 장면이 바로 그러하다.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천적으로—아니 실존적으로—알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눈을 뜰 수 있다. 

그 ‘다른 사람’이란, 단지 정보를 가진 자가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본’ 사람, 다시 말해 사건의 중심에 서 본 증인을 가리킨다.(11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그 질문을 입으로 꺼내기도 전에, 이미 그 질문의 전제를 무너뜨리는 답을 주셨다.(요 2:25)

“인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행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새로 태어남’이다.”


여기서 “거듭나다”로 번역된 헬라어(ἄνωθεν)은 단순히 ‘다시’가 아니라, ‘위로부터’, 곧 '하나님께로부터'를 뜻한다.

이 '새로 태어남'은 인간의 결단이나 노력, <율법적 행위>나 <종교적 성취>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일으키실 수 있는 주권적인 역사라는 뜻이다.


요한복음은 이미 앞에서 이를 분명하게 밝혔다.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요 1:12–13)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일 3:9)



[적용 및 오늘의 기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 혹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합니까?"  


니고데모의 문제는 곧, '율법을 지키는 자신들의 행함'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다'는 <종교적 확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3절)라고 하시며, 그들이 지금까지 쌓아 올린 종교적 사다리를 통째로 무너뜨리셨습니다. 


한마디로 니고데모의 신앙 구조는 "아래에서 위로"(선을 행함 → 자격 취득→ 생명 선사)이라면,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의 구조는 "위에서 아래로"(하나님의 생명 주심→ 새 탄생 → 새로운 삶이 가능)이라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선(improvement)이 아니라 탄생(birth)이며, 수정(reform)이 아니라, 기원(origin)의 변화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어떤 공로'를 통해서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성령으로 침투하시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의미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증언자>로서 제시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지식과 체험에 근거하여, ‘거듭남’이 하나의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건임을 선포하고 증언하셨습니다. 


니고데모가 이 기적에 <접속>하고, 그 사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설명이 아니라, 이 증언을 <믿는 믿음>이 필수불가결하였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이러한 대화는 12절에서 니고데모의 강박적인 질문으로 일단 멈추는 듯 보이지만, 요한복음은 이 이야기가 실패로 끝났다고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 7:50–51절과 요 19:39절은, 이 밤의 대화가 니고데모 안에서 "영생의 씨앗"이 되었고, 결국 "그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편"에 서게 되었음을 조심스럽게 증언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9:39-40

39 또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40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 사람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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