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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토).26 매일성경읽기 QT 각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내리는 결단 I 한상인 담임목사 Publish on February 06,2026 | 서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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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울장로교회
댓글 0건 조회 119회 작성일 26-02-0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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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토).26 매일성경읽기 QT 요한복음 3:16-21

각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내리는 결단 I 한상인 담임목사


요한복음 3:16-19 [새번역]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요한복음 3장 13–21절은 니고데모와의 대화 속에서 제기된 모든 질문의 초점을 ‘인간의 믿음의 태도’에 맞추고 있다.

여기서 '믿음이란' 단순한 동의나 이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맡기는 결단'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홀로 자격 있는 계시자"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자 "인도자"(13절, 요 14:6), "영생을 주시는 유일한 중재자"(14–15절)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기를 거절하는 것은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의 길을 거부하는 선택이 된다.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만나는 그 순간, 그리고 그분의 증언을 듣는 자리에서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다.

그 결정은 타인이 대신할 수 없으며, 각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내리는 결단이다.


최후의 심판은 새로운 판결의 자리가 아니라, <지금> 이 삶 속에서 <이미> 내려진 그 결정이 단지 확인되는 자리일 뿐이다.(눅 12:8–9)

그러므로 심판은 미래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현재적 현실>이 된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빛’은 단순한 도덕적 기준이나 종교적 가르침이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참 생명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고자 하셨던 궁극적인 생명이기 때문이다.(요 1:4–9, 8:12, 9:5, 12:35–36, 46)


그러므로 이 생명을 기피하고 거부하는 것은 '중립적인 선택'이 아니라, <궁극적인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19절은 "사람들이 왜 이 빛을 거부하는지"를 드러내고, 21절은 그와 대조적으로 "빛 가운데로 나아오는 삶"을 권면한다.


21절이 말하는 선한 삶과 하나님께 합당한 삶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그 '빛'을 받아들인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열매'이다.

이러한 삶은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 정직하게 드러내게 한다.



[적용 및 오늘의 기도]

오늘 이 말씀이 우리를 향하여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분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오늘도 이 빛 앞에서 우리 모두는 결단해야 합니다.

"어둠 속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갈 것인지를 말입니다.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맡기며,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결단을 하시기를 권면합니다.

믿음의 결단은 미룰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응답해야 할 '부르심'입니다.


찬양:  https://youtu.be/Z3LyJ0eRdB0?list=RDZ3LyJ0eRd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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