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목).26 매일성경읽기 QT '주님의 시간'을 붙들었던 사람들 I 한상인 담임목사 > 말씀묵상QT 은혜나눔

본문 바로가기

말씀묵상QT 은혜나눔

2.12(목).26 매일성경읽기 QT '주님의 시간'을 붙들었던 사람들 I 한상인 담임목사 Publish on February 12,2026 | 서울장로교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울장로교회
댓글 0건 조회 142회 작성일 26-02-12 05:57

본문



2.12(목).26 매일성경읽기 QT 요한복음 4:43-54

'주님의 시간'을 붙들었던 사람들 I 한상인 담임목사


요한복음 4:43-54 [새번역]

43 "이틀 뒤"에 예수께서는 [거기]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셨다.

44(예수께서 친히 밝히시기를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하셨다.)

45 예수께서 [갈릴리]에 도착하시니,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를 환영하였다. 그들도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께서 거기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단순히 지나가시는 길이었지만 "이틀"을 머무셨다. 이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회개와 갈망, 말씀에 대한 수용성을 잘 보여 주는 표현이다.

그들은 예수님께 '표적'을 요구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며, 수가성 여인의 증거를 듣고 그들은 “친히 듣고” 믿었다.(요 4:42)


사마리아는 유대인이 무시하던 땅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더 깊은 믿음>이 나타났다. 이것은 <복음>의 능력이 '경계 밖'에서 더 깊이 열매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말씀을 사모하는 곳>에 항상 <주님의 임재>가 "길어졌다." 또한 <회개하는 공동체>는 어김없이 <주님의 시간>을 붙들었다.

오늘날 교회가 부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갈급함"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치 격언처럼 남아있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한다”(44절)는 말로 사마리아 사람들의 영적 부흥을 치켜 세우셨다.


Q.왜 고향에서는 유능한 사람일찌라도 "배척"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아마도 "익숙함"이 <경외심>을 약화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과거의 이미지"에만 그 사람을 가두어 놓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이 "가장 둔감해"질 수 있다. "오래된 신앙"이 <깊은 신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목회적 차원에서도, 오랫동안 말씀을 들은 성도가 가장 쉽게 감동을 잃을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45절) 예수님을 영접했다.


이것은 '적대'가 아니라, 분명 <환영>이었다.

그러나 그 환영은 말씀 중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표적 중심"의 반응이었다.


<표적>은 '믿음을 돕는 수단'이지, '믿음 그 자체'가 결코 될 수 없다.


'기적'은 한 순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모르만, 그렇지만 <말씀>은 '생명'을 만들어 낸다.

'기적'과 '표적 중심 신앙'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적용 및 오늘의 기도]

사마리아에서의 "이틀"은 <말씀을 사모하는 공동체>에 <주님이 얼마나 오래 머무시는지>를 여실히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사마리아 신앙>인가? 아니면 <갈릴리 신앙>에 아직도 그대로 머물러 있는가?

기도의 응답이 없다면, 덩달아 믿음도 식는가?

은혜의 기적이 없으면, 그나마 지녔던 '열심'마저도 줄어드는가?


아니면,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를 열망하고, 묵묵히 사모하는가?


우리는 매주 예배하고, 매주 설교를 듣고, 늘 같은 내용의 복음을 접합니다.

그러나 익숙함은 언제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은혜'를 희석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라도 나에게 편한대로, '익숙함'을 깨는 영적 태도가 필요합니다. 

예배 전에 <회개 기도>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믿음의 자세, 한 구절 성경말씀이라도 내 일상의 삶에 구체적으로 순종하는 연습과 “나는 다 안다”는 방관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의 '멸시'를 아셨고, 그들의 '거절'을 예상하셨으나, 그럼에도 '사명을 따라' 움직이셨습니다.

우리의 기준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찬양: https://youtu.be/tfDp1CZav5E?list=RDtfDp1CZav5E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